essay

고통에게 1

2020. 12. 2. 23:11

 

 

어느 굽이 몇 번은 만난 듯도 하다

네가 마음에 지핀 듯

울부짖으며 구르는 밤도 있지만

밝은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너는 무심한 표정으로 와서

쐐기풀을 한 짐 내려놓고 사라진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삶을 짜깁는다

 

손끝에 맺힌 핏방울이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네 속의 폭풍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봄볕이 아른거리는 뜰에 쪼그려 앉아

너를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인가

오늘은 비명 없이도 너와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말해도 좋은 것인가

 

제 죽음에 피어날 꽃처럼, 봄뜰에서

 

-나희덕, <고통에게 1>

 

 

 


 

내일이 수능이길래 2년 전 필사집을 꺼내보았다.

수능이 91일 남았을 때 필사했던 시인데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19살의 나는 시도 정말 많이 읽고 노래도 정말 많이 듣고 아무튼 정말 감성적인 친구였다.

남들보다 덜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의 흔적들을 보면 남들만큼 힘들었나 보다.

재수 안 한 거 정말 잘 한 거 같고, 기말고사...... 아마도 못 치겠지만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모두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