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의 그림자

2020. 12. 2. 23:23

 

 

 

은교 씨는요, 하고 무재 씨가 젓가락으로 계란을 자르며 말했다.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계란 먹을래요?

 

네.

 

 

무재 씨는 반으로 자른 계란을 집어서 내 그릇에 넣어 주고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었다. 멀리 떨어진 면옥의 벽에 걸린 거울을 보니 무재 씨의 맞은 편에서 나는 얼굴을 매우 붉히며 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리느냐고 무재씨가 물었다. 탕이 너무 뜨거워서, 라고 말하며 나는 냅킨으로 땀이 밴 이마를 눌렀다.

 

 

- 황정은, <百의 그림자>

 

 

 


 

그래 이 맛에 황정은 소설 읽었지. 하루종일 무재 씨와 은교를 생각하면서 얼굴을 붉히던 때가 있었지. 갈비탕은 쟤네가 먹었는데 왜 내가 빨개지는데요?

그냥... 필사집 보다가 이런 것도 필사해놨길래 봤더니 지금도 너무 설레서 여기 아카이빙 해놓는 거예요. 노란장판 맛집 황정은 소설 가끔 이런 설렘 포인트 있으면 나 같은 오타쿠들은 또 잠 못 이루는 거지.

 

p.s. 썸네일은... 나의 리틀 퍼피의 손입니다. 혹시나 궁금할 까봐^^